감자와 정어리 사이

오늘
앨범 : 어서오세요, 고양이 식당입니다 5
작사 : 오늘
작곡 : Mate Chocolate

물개 씨는 손을 뻗어 흙정어리를
건네받습니다. 그리고 무슨 생각을
하는지 물끄러미 그것을 바라봅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요.
축 처진 수염처럼 힘이 빠진
목소리로 물개 씨가 중얼거립니다.
“저도 이렇게 보이는 걸까요?”
“무슨 말씀이시죠?”
“이 모습을 보고 생선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잖아요.”
물개는 잠시 눈을 감았다
뜨고는 다시 말합니다.
“저도 마찬가지겠죠.
이제껏 범고래가 떠들어대던
제 모습이 진짜 제가
아니라고 해도,
누구도 믿어주지 않겠죠?”
“아마도요.”
무심한 대답을 들으며,
물개 씨는 흙정어리 수프를
천천히
숟가락으로 떠먹습니다.
저는 그동안 조리대의
아래쪽에 있는
선반들을 살펴봅니다.
어디에 갔을까요. 분명
여기 어디 두었던 것 같은데
말이죠.
꼬마 녀석이
아르바이트하는 동안
제 편한 대로
정리를 해 둔 터라 뭐가
어디에 있는지 알 수가 없군요.
그릇의 절반이 비어갈 무렵,
물개 씨가 덤덤한 목소리로
읊조립니다.
“어쩌면 사람들이 생각하는
내가 진짜 나일지도 몰라요.
저만 그걸 모르고 있을지도요.
범고래의 말처럼 저야말로 무엇하나
제대로 해낼 줄 모르는
구제 불능이 아닐까요.”
찾았습니다. 여기에 있었군요.
달팽이 껍질을 모아놓은 상자 뒤쪽에
몇백 년은 되어 보이는
서책 한 권이 얌전히 꽂혀 있습니다.
곧 바스러질 것같이 오래된 책이지만,
이래 봬도 안에 적힌
내용은 꽤 쓸만한 것입니다.
허리를 펴고 몸을 일으킨 저는
물개 씨에게 서책을 건넸습니다.
얼떨결에 낡은 책을 건네받은
물개 씨는 영문을 알 수 없다는
듯 저를 바라봅니다.
“조선 시대에 만들어진 식재료에
대한 도감입니다. 보릿고개가 시작될
무렵의 구황작물을 소개한 서책이죠.
흙정어리를 재배하는
법과 생태적 특성에 대해 꽤 자세히
연구한 내용이 적혀있으니
한 번 읽어보시겠습니까.”
아주 영특한 인간 하나가
흙정어리를 발견하고 연구한
기록입니다.
이 맛있는 식재료가 사람들에게
알려졌다간 씨가 마를 게
분명하니 이미 기록은 모두
수거해 폐기했습니다. 오백 년쯤
전이었던가요. 어쨌거나 이 서책이
흙정어리에 대한 내용이 담긴
마지막 문서라는 사실은 분명합니다.
유심히 책을 읽는 물개 씨의
얼굴은 여전히 침울해 보이지만,
그게 묘하게 귀여운 구석이 있습니다.
그런 면이 어쩐지
꼬마 녀석과 조금 비슷하달까.
“무리에서 떨어져 나온 정어리들이
감자를 뽑은 자리에 들어가
일 년을 넘게 자라면 감자와 닮은
모양이 된다. 바다의 향과 땅의
기운을 모두 품어 심신이 허약한
곳에 특히 좋고, 기력 회복이
명약이다. 맛은 담백하고 깨끗하며,
생으로 먹어도 날생선의
비린내가 없어 남녀노소 모두
먹기 좋다.
다만 물에 사는 생선이 뭍에
올라와 깊은 땅에 숨는 연유를
알 길이 없다.”
소리를 내어 책을 읽던 물개 씨가
문득 읽기를 멈추고 중얼거립니다.
“무리에서 떨어져나온 정어리들……,
무리에서 떨어져나온 정어리들…….”
물끄러미 바라보는
저를 향해 고개를 들고
물개 씨가 말합니다.
“저는 알겠는데요.”
“무엇을 말입니까.”
“정어리가 땅에 숨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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