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오랫만에 재 너머 장 서는 날
아버지 조반 들고 총총히 떠나시고
어머님 세수하고 공연히 바쁘시고
내 누이 포동한 볼 눈매가 심난하다
어린 소 몰아 몰아 아버님 떠나시자
분단장 곱게 하신 어머님도 간 데 없고
영악한 우리 누이도 샛길로 숨어가고
산중의 초가삼간 애기 하나가 집을 본다
산중의 애기 하나 혼자서 심심해라
우리 오매 어디가고 우리 누이 어디 갔나
열린 문 저거 넘어 너두야 따라 갈래
재 너머 장 거리엔 구경거리 많다더라
장거리 구경거리 꿈에나 보자는지
애기는 제 팔 베고 스르르 잠이 들고
이리 뒤척 저리 뒤척 깊은 잠 못 자는데
애기네 집 마당에 먹구름 몰려온다
배고파 깨인 애기 빗소리에 귀가 번쩍
문 밖을 내다 보다 천둥 번개에 놀라고
그래도 꿈쩍 않고 신기한 듯 바라보다
무슨 소견 제 있는지 입 속으로 중얼댄다
비야 비야 오지 마라 재 너머 장거리에
소 팔러 간 우리 아배 좋은 흥정에 일 다 보고
대낮 술에 취하시어 가슴도 후끈한데
후드득 소낙비에 소주 탁주 다 깨신다
비야 비야 오지 마라 재 너머 장거리에
사당패 짓거리에 넋이 나간 우리 오매
죄는 가슴 땀 나는 손 소낙비에 흥 깨지고
정성 들여 곱게 하신 분단장도 지워진다
비야 비야 오지 마라 재 너머 장거리에
몰래 나간 우리 누이 비 맞으면 혼이 나고
포목전 예쁜 옷감에 공연히 설레이다
이리 질척 저리 질척 장 구경도 다 못한다
(1981년 3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