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10.06.

음악도시

그 남자...♂

어제 그런 일이 있은 후에... 그녀와 완전히 헤어진 후에...
사실 먼 곳으로 떠나고 싶었지만... 시간도, 돈도...
그래서 가까운 곳으로 여행...
여행은 아니네요... 그냥... 서울이 아닌 곳으로 왔습니다...
한시간만 달려도 이렇게 조용한 세상이 있었다는 게 참 놀랍습니다...
뭐든 그런가보죠???
그 중심에 있을 땐 다른 세상이 있을 것 같지 않은 거...
내가 살아가는 도시도, 내가 사랑하는 사람의 마음도...
사람들은 모두 논밭에서 바쁜 오후... 훔쳐갈 것 하나 없어 보이는 시골집...
마당 한켠에서 잔등에 볕을 쬐고 있는 누렁이 한마리...
바쁜 농사일에 개밥 챙기는 것도 잊었는지...
물기마저 말라버린 누렁이의 밥그릇에 물 한바가지를 부어주며 그 앞에 마주 앉아서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집니다...
"너도 나도 훔쳐갈새라 지킬 것 하나가 없구나... 너 몇살이니...? 군대는 갔다 왔니...?"
붙잡을 수도, 원망할 수도, 매달릴 수도... 아무런 여지도 남아있지 않은 내 사랑...
대문도 없는 시골집... 끼니도 거른 채 그 마당을 지키는 까만 눈의 누렁이 한마리...

그 여자...♀

강남역 사거리...
주차장처럼 길게 늘어선 자동차들...
내가 탈 버스를 기다리다 기다리다 목을 빼어 돌아보다 돌아보다 문득 떠오른 질문 하나...
내가 지금 기다리고 있는 게 정말 버스였던가...?
무릎이 탁 풀려 정류장에 주저앉으면 내 구부러진 등뼈 위로 쏟아지는 햇살, 햇볕...
마치 누군가의 더운 손이 내 등을 어루만지듯...
메스꺼림을 가라앉혀 가늘게 눈을 뜨면 여전히 움직이지 않는 버스들...
이렇게 쪼그려 앉아 있으면 시간도 퇴근길 버스처럼 영원히 멈출 것만 같은데...
그래도 신호가 바뀌면 기어가듯 뒤로 가듯 움직거리는 자동차들...
몸을 일으켜 저린 다리를 절뚝대며 버스를 향해 걸어갑니다...
어제까지는 오래오래 정체되어 있던 낡은 우리 사랑...
어제까지는 서로에게 매연을 내뿜던 못된 우리 사랑...
하지만 오늘부턴 움직여야 하니까...
막혀도, 느려도, 멀미가 나도... 각자의 노선을 따라 움직여야 하니까...
이미 어제는 어제로 끝났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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