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버
어디서부터 이 글을 시작해야 할까. 시작은 강의 도중 미해결과제와 정서접촉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부터였다. 나는 내 나이든 개와의 이별을 제법 잘 받아들였고, 동시에 여전히 그 이별의 흔적이 남은 삶을 살고 있다. 확실한 것은 내가 에버를 다시 보고 싶다거나 다시 안아보고 싶다거나 에버가 다시 태어났으면 좋겠다는 류의 바람을 갖고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유기된 채 한 달 사이에 일곱 곳을 떠돌다 동물병원 케이지에 갇혀 벽만 바라보고 있던 에버를 처음 보고, 내가 키우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강렬한 예감에 우여곡절을 거쳐 그 애를 입양하고 처음 좁은 원룸에 데리고 왔던 날, 사실 나는 무서웠다. 4키로 대의 작은 개가 가진 영혼의 무게가 갑자기 나를 덮쳤고, 잦은 변화로 인해 나에게 쉽게 곁을 내주지 못하는 그 개와 내가 남은 긴 시간을 함께 잘 살아갈 수 있을지, 어린 시절 개를 키울 때는 경험해보지 못한 책임감과 무게가 생생하게 나를 짓눌렀다.
두려움도 잠시, 에버는 내 전부가 되었고 내 20대의 전우였으며 가족이었으며 자식이었다. 무슨 이유였는지는 몰라도 나는 막연히 내가 마흔이 넘으면 조금쯤은 단단해져있을 거라 생각했던 것 같다. 혹은 단단해지기를 바랬는지도. 그래서 늘 에버에게 말했다.
“내가 사십살 될 때까지 꼭 같이 살아줘야해. 알았지?”라고.
평생 의젓하고 속 깊고 선비 같았던 에버는 흔히들 노견이 겪는 투병생활도 없었고 그저 건강하게 일상을 살아냈다. 그래서였을까. 에버가 15살이 지났을 무렵부터 나는 병원 선생님께 물었다.
“선생님, 아프지 않고 잘 지내다가 그냥 떠나기도 하나요?” 라고.
선생님은 내게 말해주었다. 에버는 그럴 거라고. 대신 에버는 언제 떠나도 이상한 나이는 아니라고. 무서우면서도 눈에 보이지 않는 이별이라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그래도 나랑 사십살까지 살아줄거지?’
나는 추정 나이 여섯 살의 에버와 함께 살며 늘 에버의 어린시절이 궁금했다. 너는 태어났을 때부터 이렇게 차분하고 속 깊은 아이였을까, 전주인과의 이별이 널 철 들게 만들었을까. 마트 보관함에 널 버리고 떠나는 그 뒷모습을 보고 너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내 마음에 답이라도 주듯 말년의 너는 모두가 믿기지 않을 정도로 한 두 살 먹은 강아지의 어리광과 장난기를 보여주었다. 정말 모든 걸 다 해줬구나 너는.
나는 사실 늘 너 없이 살아야 할 내가, 남겨진 내 삶이 무서웠다. 19년 1월 에버의 배가 걷잡을 수 없이 부풀어 올랐고, 놀라서 병원에 간 내게 병원 선생님이 말하길 이젠 에버의 몸 속 장기가 서서히 노화하는 거라고, 이젠 모든 장기의 노화 속도가 비슷하길 바라는 것만이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이라 했다.
아직도 자다가 갑자기 소스라치게 놀라 거실로 뛰쳐나간 그 새벽을 기억한다. 아픈 걸 보여주기 싫어 거실에 나가 부푼 배로 힘들게 호흡하던 에버를 품에 안고 진정시키다가 처음으로 나는 삶의 어떤 한 지점을 넘긴 것 같았다.
내가 미치도록 이기적인 인간이었구나. 이 애를 사랑한다면서, 이 애로부터 받은 게 그토록 많은데 나는 나만 생각하고 있었구나. 남겨질 내가 두려워서 이렇게 아픈 애를 붙들고 있었구나. 이게 무슨 사랑인가. 내가 헛사랑을 하고 있었구나. 그제야 진정으로 에버에게 말해줄 수 있었다.
“에버야. 나 정말 괜찮아. 너 아프면 절대, 조금도 참지 말고 가도 돼. 나는 걱정하지 마. 너만 아프지 않으면 돼”라고. 그 순간부터 하루를 살아도 에버가 나랑 살아줘서 고맙다는 생각만 하게 되었다.
2015년, 내년에도 이 봄을 에버와 함께 볼 수 있을지 마음 한구석이 서걱거렸는데, 감사하게도 에버는 19년 봄까지도 나와 함께 있어주었다. 그것도 언제 배가 아팠냐는 듯 건강하게. 나중에 에버가 떠나고서야 병원 샘은 나에게 말했다. 보통 배가 그렇게 부풀면 일주일을 못 넘기고 애들이 떠난다고. 에버야..대체 너는..
늘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었는데, 해외에 나가야만 했을 때 에버의 부고를 들었다. 아직도 그 순간은 조각난 영화처럼 그렇게 선명하게, 하지만 뚝뚝 끊긴 채로 내 기억 속에 남아있다. “에버가 죽었어”라고 울던 엄마의 목소리. 그 너머로 들려오는 아빠의 울음소리. 달래야 할 사람들이 너무 많아 나는 오히려 울지 못하고 침착했던 것 같다. 한국에 돌아와 부모님 댁에서 꽁꽁 얼어붙은 에버를 품에 안고 서울에 올라가 장례식장으로 향하며 계속 에버의 앞발을 만지작거리던 그 순간이 기억난다. 에어컨을 틀어놓고 내 온기에 행여라도 에버의 시신이 상할까봐 조심스럽게 그 앞발만을 만졌더랬다.
이별이 처음은 아니라 사실 마음의 준비를 했었다. 에버가 떠나면 남은 간식을 보고서도 울게 될 수 있어. 남은 샴푸를 보고도 울 수 있어라고. 너무 준비를 해서인지 정작 남은 간식을 보고서는 울지 않았는데 아침 잠결에 “애기 약 먹여야해”라고 중얼거리면서 깨는 내 습관에 울었다. 어느 날 TV에서 나오는 노래를 듣다가 “ever”라는 단어에 갑자기 울었다. 혹여라도 내가 에버와의 이별을 부인하거나 회피했다가 나중에 덮쳐 올 후폭풍이 두려워서라도 나는 열심히 이별을 받아들이려 노력했다. 피하지도 않고 도망가지도 않고. 에버 생각이 나면 웃었고 울었고 그리워했다. 그래서 나는 생각했다. 내가 잘 받아들이고 있다고.
시간이 지나 부모님 댁에 가서 습관적으로 늘 자던 곳에 누워 자려는데 그제서야 에버가 떠나는 순간의 모든 감각들이 생생하게 수면 위로 떠올랐다. 바로 그 자리에 에버가 죽어있었다고 했으니까. 현관부터 이어진 대변의 흔적들. 너는 나를 기다리다가, 나를 찾다가, 내가 늘 자던 그 자리에서 그렇게 떠난 것인가. 에버가 대체 무슨 마음으로 그 집 안에서 마지막 걸음을 옮겼을지, 그리고 숨이 끊어지는 그 순간에 혹여라도 내가 너무 보고 싶었으면 나는 어떡하지. 너에게 너무 미안해서. 그래서 그 생생한 감각들이 너무도 아파서 오늘 이 글을 쓰기까지 나는 에버를 기억하고 추억해도 그 순간만큼은 깊숙이 들어가지 않으려 무의식 저편에 모든 것을 묻어두었다.
에버와의 이별로 고통스러워 다른 강아지를 키우지 못했던 것도 아니고, 선물 같은 아이와 너무도 잘살고 있어서 나는 내가 괜찮은 줄 알았다. 강의 도중 내가 그 순간과의 접촉을 사실은 회피하고 있음을 깨닫기 전까지는. 왜 에버보다 한참 어린, 지금 한창때인 건강한 강아지를 집에 두고서 밖에 있으면 불쑥 이 애가 잘못되었을까봐 두려움에 휩싸이는지.
병원 샘이 에버를 보낸 내게 그리 말했었다. 그 해 초부터는 내 태도가 묘하게 달랐다며. 예전에는 에버가 없으면 안돼요. 에버가 아프면 안돼요라던 내가 에버가 편안히 지내다 가면 좋겠다는 말을 하더라고. 남들 눈에도 그게 보였을지도.
나는 그래서 내가 에버와 잘 이별한 줄 알았다. 에버와의 이별을 잘 받아들인줄 알았다. 반은 맞고 반을 틀렸다. 나는 에버와 잘 이별했지만 내 소중한 개를 상실한 인간이었고, 에버의 마지막에 함께 해주지 못한 것이 너무 미안한 겁쟁이였다. 그리고나서 떠올랐다. 내가 에버에게 항상 사십살 까지 함께 살아달라고 하며 언젠가부터 했던 부탁이.
“에버야, 나는 정말 괜찮으니까 내가 너랑 인사못해도 나는 정말 괜찮으니까, 너는 아프지 말고 편안하게 살다가 그렇게 떠나.”라고. 넌 정말 다 들어줬구나.
에버야, 너를 너무 사랑해서 나에게 너는 너무도 기특한 아들이라서 나는 너 이후에 그 어떤 강아지도 사랑할 수 없을 것만 같았는데, 모두가 너랑 너무 판박이라고 말하는 아이를 만나 지금 행복하게 지내. 이런 이별의 순간들을 겪고 겪으며 나도 조금은 더 단단해지겠지. 사실 나 이 긴 글 끝에 너라면 뭐라고 말할지도 알 것 같아. 에버 너라면 그렇게 말하겠지.
“사십살까지 같이 있어주지 못해서 미안해”라고.
6개월이잖아. 에버야. 우리 약속지켰다고 퉁치자. 한번은 꼭 이 마음을 글로 정리해야 한다고 생각했어. 용기가 없어서 5년이 지나 이제야 이렇게 글을 써. 에버는 에버잖아. 고마워. 내가 가장 힘들던 나의 20대에 나타나줘서. 나의 30대를 함께해줘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