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나라 때, 박릉(博陵; 지금의 하북성 정현 일대) 출신의 최호(崔護)라는 매우 잘 생
긴 젊은이가 있었다. 그는 자가 은공(殷功)이며, 덕종(德宗) 정원(貞元) 12년, 즉 796
년 과거에 급제하여 영남(嶺南) 절도사를 지냈다.
어느 해, 청명(淸明)이던 날, 최호는 혼자서 장안(長安)을 여행하다 성(城)의 남
쪽에 이르렀다. 그는 복숭아 꽃이 만발한 곳에 집 한 채가 있는 것을 발견하고, 물을
얻어 마시기 위해 대문을 두드렸다. 한 여인이 나와서 그에게 물 한 잔을 따라 주었
다. 꽃이 만발한 복숭아나무 아래에 선 그 여인은 마치 복숭아꽃 같았다.
최호는 그 여인의 아름다운 자태에 넋을 잃었고, 그 여인도 최호의 뛰어난 모습
에 반하였다.
이듬해 같은 날, 최호는 다시 그 곳에 가서 그 여인을 찾았다. 집과 담은 옛모습
그대로였지만, 문은 이미 굳게 닫긴채 사람의 모습은 찾아 볼 수가 없었다. 이에 최호
는 <제도성남장(題都城南莊)>이라는 시 한 수를 지어 사모하는 마음을 달랬다.
이 시를 문에다 써 붙였다. 며칠 뒤에 다시 가서 문을 두드렸더니 老父가 나
와 "내 딸이 문에 붙은 시를 읽고는 병이 나서 죽었네" 하였다. 최호는 청하여 들어
가 여인이 누워 있는 모습을 보고 말하여 "나 여기 왔소"하였더니, 여인은 금방 눈을
뜨고 다시 살아났다. 노부가 그 딸로써 아내를 삼도록 하였다. 그 뒤 최호는 정원 12
년에 과거에 급제하여 進士가 되고 영남절도사로 벼슬을 마쳤다. 이러한 내력은 '本事
詩'나 '麗情集'에 전한다.
이 싯구가 나온 기원으로 '人面桃花'란 '보고 싶어도 찾을 수 없는 아름다운 여인'을
뜻하는 말로 쓰이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