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지막이 찾아온 도시의 평화 속
불어오는 찬바람에 식어버린 손
주머니에 구겨 넣고 산책을 한다
나도 몰래 발을 옮긴 낮 익은 그 길
터벅터벅 내딛는 힘없는 두발 위엔
빨래처럼 축 늘어진 굳어버린 팔
애써 팔을 휘청 이며 산책을 한다
처음 걷듯 발을 옮긴 익숙한 그 길
이 길로 가야할지
저 길로 가야할지
헤매이다 마음이 먼저 가 있는
판화같이 새겨진 나뭇잎 터널
아이처럼 헤매이며 서성여 본다
너와 같이 와본 길도 아닌데
이 곳에 너를 물들여 본다
이 길로 가야할지
저 길로 가야할지
헤매이다 마음이 먼저 가 있는
점점 무뎌지는 아픔들처럼
서서히 지워져 가는 추억의 흔적
애꿎은 나뭇잎을 하나하나 뜯다
마지막 잎사귀만은 뜯지 못하고
그저 바라보기만 해
인적 없는 벤치와 잊혀진 낙서들
주인 없이 나뒹구는 차가운 공기
애써 어깰 펴고 크게 마셔보지만
이미 공허한 내 맘은 채워질 수 없어
한 숨을 뱉고 남은 길 위로 두 발을 옮기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