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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태홍 가야금 산조 진양, 중모리

다만 1930년대 10년 동안은 서울로 활동지를 옮겨 조선악협회, 조선성악연구회에 참여하면서 가야금 산조와 병창 공연과 교습은 물론 창극활동에도 적극적이었고 이때에 몇 편의 음반취입도 할 수 있었다.

진양-가야금산조 Various Artists

가야금 산조/서공철류 가야금: 강정숙 장고: 김청만 서공철류 가야금 산조는 꿋꿋하며 즉흥성이 매우 강하기로 소문나 있어 배우기가 굉장히 까다롭다 한다. 서공철은 경기도 여주출신으로 어려서부터 외삼촌인 가야금 명인 정남옥문하에서 수학하였다 한다.

중모리, 중중모리 Various Artists

가야금 산조/서공철류 가야금: 강정숙 장고: 김청만 서공철류 가야금 산조는 꿋꿋하며 즉흥성이 매우 강하기로 소문나 있어 배우기가 굉장히 까다롭다 한다. 서공철은 경기도 여주출신으로 어려서부터 외삼촌인 가야금 명인 정남옥문하에서 수학하였다 한다.

굿거리, 자진모리 Various Artists

가야금 산조/서공철류 가야금: 강정숙 장고: 김청만 서공철류 가야금 산조는 꿋꿋하며 즉흥성이 매우 강하기로 소문나 있어 배우기가 굉장히 까다롭다 한다. 서공철은 경기도 여주출신으로 어려서부터 외삼촌인 가야금 명인 정남옥문하에서 수학하였다 한다.

휘모리 Various Artists

가야금 산조/서공철류 가야금: 강정숙 장고: 김청만 서공철류 가야금 산조는 꿋꿋하며 즉흥성이 매우 강하기로 소문나 있어 배우기가 굉장히 까다롭다 한다. 서공철은 경기도 여주출신으로 어려서부터 외삼촌인 가야금 명인 정남옥문하에서 수학하였다 한다.

진양 Various Artists

산조합주 대금: 서용석, 박천택 아쟁: 박종선 거문고: 원장현 피리: 한세현, 황광엽 장고: 장덕화 가야금: 정경옥, 강선례 해금: 김정림 산조란 즉흥음악이란 뜻이 담긴 곡으로 남도풍의 시나위 음악이 장단구성과 함께 체계화된 기악독주곡 형식이다. 19C말경 김창조(1865~1918)에 의해서 가야금 산조가 처음 만들어진 이래 현재는 여러 악기의

백낙준 거문고 산조 진양

그런데 신쾌동이 1929년부터 4년간 수업했다는 구술, 1929년 9월 14일에 ‘매일신보’ 후원으로 열린 조선명창대회에서 한성준, 공창식, 김창환, 안기옥 등과 함께 공연한 기록, 빅터 유성기 음반에 취입한 것이 1929년 11월이었던 점, 1932년 전남 창평에 거주하던 박석기가 백낙준을 초청, 거문고 산조 한바탕을 배웠다는 기록으로 미루어 전자보다는 1935년

중모리 Various Artists

산조합주 대금: 서용석, 박천택 아쟁: 박종선 거문고: 원장현 피리: 한세현, 황광엽 장고: 장덕화 가야금: 정경옥, 강선례 해금: 김정림 산조란 즉흥음악이란 뜻이 담긴 곡으로 남도풍의 시나위 음악이 장단구성과 함께 체계화된 기악독주곡 형식이다. 19C말경 김창조(1865~1918)에 의해서 가야금 산조가 처음 만들어진 이래 현재는 여러 악기의

가야금산조, 박상근류 Various Artists

가야금 : 지애리, 장구 : 김청만 가야금독주 산조는 즉흥적인 음악이란 뜻이 담긴 곡으로 허튼 가락이라고도 부른다.

아쟁 산조(한일섭류) 서용석, 박종선

장단구성은 산조의 전형적인 진양 -> 중모리 -> 중중모리 -> 자진모리로 이루어져 있다.

김죽파류 가야금 산조 -- 3. 중모리 문재숙

김죽파류 가야금 산조 3. 중모리....

백낙준 거문고 산조 중모리

그런데 신쾌동이 1929년부터 4년간 수업했다는 구술, 1929년 9월 14일에 ‘매일신보’ 후원으로 열린 조선명창대회에서 한성준, 공창식, 김창환, 안기옥 등과 함께 공연한 기록, 빅터 유성기 음반에 취입한 것이 1929년 11월이었던 점, 1932년 전남 창평에 거주하던 박석기가 백낙준을 초청, 거문고 산조 한바탕을 배웠다는 기록으로 미루어 전자보다는 1935년

정해시 퉁소 산조 중모리

음반에 남아있는 퉁소음악은 빅터 KS-2007에 유동초의 산조 중모리가 있는데 이 산조의 음악적 내용은 이진원에 의해 분석된 바 있다.(이진원 “유동초 퉁소산조의 선율분석” ‘한국음반학’ 제2호, 1992). 또한 유동초의 퉁소산조는 1957년에 한범수에 의해 재현된 바도 있다.

중모리 (3) 정남희

해설: 김해숙(가야금 연주인, 중앙대 강사) 정남희(1905-1984)는 최옥산(1905-1956), 안기옥(1905-1974)등과 동년배로 가야금산조의 제2세대에 든다. 이 세사람은 모두 남한에서 활동하다가 월북한 뒤 그곳에서 생을 마쳤는데 정남희는 특히 북한에서 공훈배우, 인민배우, 평양음악대학 교수를 지내기도 하면서 활약하였다.

중모리 (4) 정남희

해설: 김해숙(가야금 연주인, 중앙대 강사) 정남희(1905-1984)는 최옥산(1905-1956), 안기옥(1905-1974)등과 동년배로 가야금산조의 제2세대에 든다. 이 세사람은 모두 남한에서 활동하다가 월북한 뒤 그곳에서 생을 마쳤는데 정남희는 특히 북한에서 공훈배우, 인민배우, 평양음악대학 교수를 지내기도 하면서 활약하였다.

거문고산조, 한갑득류 Various Artists

즉 이 음악은 남도(한국의 남서부 지방)소리와 무속에 기초하여 만들어진 즉흥성이 강한 가약금 독주곡이다. 19세기 말경 김창조(1865~1918)에 의해서 가야금 산조가 처음으로 만들어져 이를 기본 틀로 하여 1890년경 백낙준(1876~1930)이 거문고 산조 가락을 편작한 것으로 전해진다.

중모리 추산 전용선

산조 목소리 : 김월하 단 소 : 추산 전용선 해 금 : 심소 김천흥 거문고 : 호석 임석윤 장 고 : 박여복

대금산조, 서용석류 Various Artists

산조 대금은 신라시대부터 전래하는 정악 대금보다 짧아서 음정이 장2도 가량 높다. 박종기(1880~1947)에 의해서 처음으로 대금 시나위(즉흥적 합주곡)가 만들어지고 한주환(1904~1944). 한범수로 전해지면서 그 산조적인 틀의 완성이 이루어졌다 하겠다.

중중모리 Various Artists

산조합주 대금: 서용석, 박천택 아쟁: 박종선 거문고: 원장현 피리: 한세현, 황광엽 장고: 장덕화 가야금: 정경옥, 강선례 해금: 김정림 산조란 즉흥음악이란 뜻이 담긴 곡으로 남도풍의 시나위 음악이 장단구성과 함께 체계화된 기악독주곡 형식이다. 19C말경 김창조(1865~1918)에 의해서 가야금 산조가 처음 만들어진 이래 현재는 여러 악기의

자진모리, 휘모리, 엇모리 Various Artists

산조합주 대금: 서용석, 박천택 아쟁: 박종선 거문고: 원장현 피리: 한세현, 황광엽 장고: 장덕화 가야금: 정경옥, 강선례 해금: 김정림 산조란 즉흥음악이란 뜻이 담긴 곡으로 남도풍의 시나위 음악이 장단구성과 함께 체계화된 기악독주곡 형식이다. 19C말경 김창조(1865~1918)에 의해서 가야금 산조가 처음 만들어진 이래 현재는 여러 악기의

최옥산류 산조합주 숙명가야금 연주단

구성: 김일륜 철금: 김일륜, 산조 가야금: 김경희, 한지연, 임재경, 김은옥 저음가야금: 이정은, 유연수, 노희숙, 장구: 성지은 이 곡은 가야금 산조의 주요 유파로 전승되고 있는 최옥산(본명: 최옥삼, 별명: 최막동 1905~1956)류 가야금 산조를 철가야금과 철현금, 저음가야금, 산조가야금으로 연주할 수 있게 재구성한 합주곡이다.

가야금 산조 / 김일륜 2002 Soccer Festival (함께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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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해시 퉁소 산조 빠른 중모리

음반에 남아있는 퉁소음악은 빅터 KS-2007에 유동초의 산조 중모리가 있는데 이 산조의 음악적 내용은 이진원에 의해 분석된 바 있다.(이진원 “유동초 퉁소산조의 선율분석” ‘한국음반학’ 제2호, 1992). 또한 유동초의 퉁소산조는 1957년에 한범수에 의해 재현된 바도 있다.

중머리 심상건

해설: 김해숙(가야금 연주자, 중앙대 강사) 심상건(1889-1965)은 가야금산조의 제2세대(조금 더 세분하면 1.5세대) 명인으로 19세기 말엽부터 20세기 중반에 걸쳐 살았기에 그의 생애는 한국 전통음악의 근, 현대역사의 소용돌이 속에 있었다고 하겠다.

언머리 심상건

해설: 김해숙(가야금 연주자, 중앙대 강사) 심상건(1889-1965)은 가야금산조의 제2세대(조금 더 세분하면 1.5세대) 명인으로 19세기 말엽부터 20세기 중반에 걸쳐 살았기에 그의 생애는 한국 전통음악의 근, 현대역사의 소용돌이 속에 있었다고 하겠다.

다스름 심상건

해설: 김해숙(가야금 연주자, 중앙대 강사) 심상건(1889-1965)은 가야금산조의 제2세대(조금 더 세분하면 1.5세대) 명인으로 19세기 말엽부터 20세기 중반에 걸쳐 살았기에 그의 생애는 한국 전통음악의 근, 현대역사의 소용돌이 속에 있었다고 하겠다.

김죽파류 가야금 산조 -- 4. 중중모리 문재숙

김죽파류 가야금 산조 4. 중중모리...

김죽파류 가야금 산조 -- 6. 휘모리 문재숙

김죽파류 가야금 산조 6. 휘모리....

김죽파류 가야금 산조 -- 7. 세산조시 문재숙

김죽파류 가야금 산조 7. 세산조시...

해금산조 서용석, 박종선

서용석류 <해금산조>의 장단구성은 진양-중모리-중중모리-빠른 중중모리-자진모리-엇모리로 되어 있는데 이 연주회에서는 25분짜리 산조를 진양-중모리-중중모리-자진모리로 국립국악원 민속연주단원인 김성아가 김청만의 장고반주에 ?Я羚?15분으로 줄여 연주한다.

진양 (상) 김종기

해설: 김해숙(가야금 연주자, 중앙대 강사) 김종기(1904-1937)는 전북 남원군 운봉면에서 출생했으며 그의 외삼촌 박한용으로부터 가야금산조를 배웠다고 전한다. 그의 출생연도에 비추어 보면 그는 가야금산조 제2세대 명인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오늘날에도 정금례(1913)가 15살때에 그의 이웃에 살던 김종기에게 이 산조를 배워서 전하고 있다.

진양 (하) 김종기

해설: 김해숙(가야금 연주자, 중앙대 강사) 김종기(1904-1937)는 전북 남원군 운봉면에서 출생했으며 그의 외삼촌 박한용으로부터 가야금산조를 배웠다고 전한다. 그의 출생연도에 비추어 보면 그는 가야금산조 제2세대 명인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오늘날에도 정금례(1913)가 15살때에 그의 이웃에 살던 김종기에게 이 산조를 배워서 전하고 있다.

백낙준 거문고 산조 엇모리

그런데 신쾌동이 1929년부터 4년간 수업했다는 구술, 1929년 9월 14일에 ‘매일신보’ 후원으로 열린 조선명창대회에서 한성준, 공창식, 김창환, 안기옥 등과 함께 공연한 기록, 빅터 유성기 음반에 취입한 것이 1929년 11월이었던 점, 1932년 전남 창평에 거주하던 박석기가 백낙준을 초청, 거문고 산조 한바탕을 배웠다는 기록으로 미루어 전자보다는 1935년

백낙준 거문고 산조 잔모리

그런데 신쾌동이 1929년부터 4년간 수업했다는 구술, 1929년 9월 14일에 ‘매일신보’ 후원으로 열린 조선명창대회에서 한성준, 공창식, 김창환, 안기옥 등과 함께 공연한 기록, 빅터 유성기 음반에 취입한 것이 1929년 11월이었던 점, 1932년 전남 창평에 거주하던 박석기가 백낙준을 초청, 거문고 산조 한바탕을 배웠다는 기록으로 미루어 전자보다는 1935년

춘향, 이도령 이별하는데 조상현

내행차 내행시 육방관속이 오리정에 나가 늘어있는데 체면없는 춘향이각 서방이별한다고 오리정에 나가 이별할리가 있겠느냐 꼼짝달싹 못허고 저희집 단장안에서 은근히 이별을 하는디 도 창: (진양) 와상우에 자리를 펴고 술상차려 내려놓고 춘 향: (진양) 이왕의 가실 테면 술이나 한잔 잡수시오 도 창: (진양) 술한잔 부어들고 춘 향: (진양) 권궁갱진

피리산조, 정재국류 Various Artists

곡의 구성은 느린 진양으로 시작하여 중모리, 중중모리, 굿거리 그리고 빠른 자진모리로 되어 있다. 피리산조의 특징은 두꺼운 겹리드에서 울려 나오는 탁하듯 부드럽고 애절한 선율과 특수한 주법인 서침이 나 목튀김, 혀굴림 등에서 찾을 수 있다. * 진양 12장단, 중모리 15장단, 중중모리 36장단, 자진모리 88장단

아쟁산조 서용석, 박종선

<아쟁산조> 역시 남도 음악어법인 판소리 더늠으로 만든 산조로 장단구성은 진양, 중모리, 중중모리, 자진모리의 4악장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선율을 연결시켜 표현할 수 있는 아쟁의 장점으로 인하여 애절하고도, 한이 서린 감정표현이 극대화되고 있다. 이 연주회에서는 서영호가 16분 짜리로 연주한다.

해금산조, 지영희류 Various Artists

곡의 흐름이 느린 진양에서 시작하며 보통 중모리, 중중모리, 굿거리, 자진모리로 되었으며 음색이 매끄러우며 특히 삼성부에서 내는 음색은 예리한 느낌을 갖게한다. * 진양 17장단, 중모리 12장단, 중중모리 16장단, 자진모리 48장단

피리산조(정재국류) 정재국

장단은 진양, 중모리, 중중모리, 자진모리로 본 연주는 16분까지로 연주한다.

아쟁, 대금 병주 서용석, 박종선

장단구성은 진양 -> 중모리 -> 중중모리 -> 자진모리 -> 엇모리로 이루어져 있다.

아쟁산조, 한일섭류 Various Artists

장별의 흐름은 느린 진양에서 차츰 빨라지는 중모리, 자진모리등 크게 3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주법은 개나리 나무로 만든 활대로 문질로 타는데 곡상의 흐름이 애한듯 강렬하고 굵은 농현법이 특징적이다. * 진양 17장단, 중모리 12장단, 중중모리 20장단, 자진모리 64장단

거문고 산조 김무길

술대(17cm 정도의 연필만한 대나무)로 줄을 튕기는 유일한 악기이고 풍류 거문고와 산조 거문고 두종이 전래되고 있다. 우리 선조들은 예로부터 악을 예와 동일시하며 인격수양을 위한 필요 조건으로 거문고를 선택, 수양의 도구로 삼았다. 즉 거문고가 가지고 있는 고매한 깊은 맛이 사대부들의 인격수양과 연결이 되면서 많은 악기중 백악지장으로 군림해 온 것이다.

짧은 산조 한세현

후학들을 위해, 또한 많은 피리 연주자들을 위하여 긴 산조 중 좋은 가락만을 엄선하여 만든 곡이다. 한결 박진감 넘치고, 구성 또한 치밀하다.

대금산조 서용석, 박종선

서용석 <대금산조>의 장단은 진양-중모리-중중모리-자진모리로 구성되어 있고 진양과 중모리는 우조-경드름-계면조로, 자진모리는 본청계면조-변청계면조-덜렁제-계면조로 짜여져 있다. 이 연주회에서는 서용석 명인이 김청만의 장고 반주에 맞추어 15분 정도만 연주한다.

남도민요 육자배기 Various Artists

그러나 말이 민요이지 실제로는 느린 진양 장단에다 선율의 기복이 매우 심하고 목을 심하게 꺾어 내기 때문에 무척 부르기 어렵다고 한다. 중모리 흥타령 역시 대표적인 남도민요로 ‘아이고 데고 성화가 났네, 흥’ 하는 후렴이 따라 붙으며, 그때그때 지어 부르는 노랫말은 흥겹기보다는 대개 애조를 띄고 있으므로 흥청대는 흥이 아니라 감시의 흥기라고 하겠다.

가야금 리타 김

울어 울어 우는구나 가야금 열두줄이 한 줄을 퉁겨보니 님에 모습 떠오르고 두줄 퉁겨보니 님에 소식 그립구나 울지마라--가야금아-- 너-마져 날 울리면 애--끌는 이-내 간장 구비 구비 눈물진다 -- 간 주 -- 꿈아 꿈아 깨-지마라 푸른 꿈 나에 꿈아 세줄을 퉁겨보니 님에 모습 새로웁고 열두줄 퉁겨보니 님에 꿈이 그립구나 울지마라-가야금아-- 너-마져 날

가야금 민리(minlee)

The truth is left in the ruinsBuried us in the lies We walk in silence 'til morning We can't hide, cannot hideThe truth is left in the ruinsBuried us in the lies We walk in silence 'til morning We ...

가야금 전우정

1. 대가야 드는 길을 마중 나온 회천강은가야산 푸른 정맥 달빛에 녹아내린나룻배 목마름 역사 소리 강이 되어슬픈 듯 초연하고 즐거운 듯 단아하여스르르 눈을 감고 숨 고르는 안개속에열두 줄 묘한 소리 저리도록 애달프다2. 바람에 현을 잡고 달빛 안고 마주 보면고분의 그림자도 한 마리 학이 되어명주실 세월 가락 혼불로 나는 울음대가야 구비 돌아 품에 안은...

가자 어서 가자 수궁가

용왕을 속여 넘긴 토끼가 자라 등에 올라앉아 한껏 위세를 부리며 세상을 나오는 대목으로, ‘가자 어서 가’는 진양 우조로 불리지만, 중중몰이 ‘백마주를 바삐 지나’에 이르면 가볍고 경쾌한 석화제로 바뀌어 고향에 돌아온 토끼의 설레임을 표현한다.

중중모리 (엇모리) (5) 정남희

해설: 김해숙(가야금 연주인, 중앙대 강사) 정남희(1905-1984)는 최옥산(1905-1956), 안기옥(1905-1974)등과 동년배로 가야금산조의 제2세대에 든다. 이 세사람은 모두 남한에서 활동하다가 월북한 뒤 그곳에서 생을 마쳤는데 정남희는 특히 북한에서 공훈배우, 인민배우, 평양음악대학 교수를 지내기도 하면서 활약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