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보가 놀보, 흥보 집에 가는 대목부터 화초장까지

이주은
앨범 : 다섯 이야기

아니리
그때여 놀보가 흥보 부자 되었단 말을 듣고 건너갔지.
“아 이놈이 이렇게 거부가 되었나?
야, 이놈 흥보야. 흥보야!”
흥보가 저의 형님 소리를 듣고 나와
인사를 드리니 들은 척도 아니허고
“흥보야, 이 집 뉘 집이냐?”
“아.. 제 집이올시다.”
“그 집 참말로 좋다. 나하고 바꿀 수 없냐?”
“형님 처분대로 하십시오.”
사랑으로 모시고 안으로 들어와
“여보 마누라. 건너마을 시숙님이 오셨으니
나가, 인사나 드리시오.”
창조
흥보 마누라가 시숙 왔단 말을 듣고
구박 당하여 쫓겨나던 일을 생각하면
사지가 벌렁벌렁 떨리나
가장의 명령을 거역치 못하여 나오난 디.
중중모리
흥보 마누라가 나온다.
흥보 마누라가 나오난 디.
전일에는 못 먹고 못 입고
굶주리던 일을 생각하니
지금이야 비단이 없나
돈이 없나 쌀이 없나
은금 보화가 없나
녹용 인삼이 없느냐.
며느리들을 호사를 많이 시키고
흥보 마누라도 한산 세모시다가
당청하 물을 포로소롬하게 놓아
주름은 잘게 잡고 말을 넓게 달아
아장거리고 나오더니.
아니리
시숙께 인사를 드리니
제수가 인사를 허거든 그대로 받는 것이 아니라
“야, 흥보야! 제수씨 쫒겨날 때 보고 지금 보니
미꾸라지가 용 되야브렀구나.”
흥보마누라 들은 척도 아니허고
안으로 들어가서 음식을 차리난디.
자진모리
음식을 차리난디
안성유기 통영칠반
천은 수저 구리저
집리 서리 수 벌리듯
주루루루루 벌려 놓고
꽃 그렸다 오죽판
대 모양 양각 당화기
얼기 설기 송편
네 귀 번뜻 정절편
주루룩 엮어 삼피떡과
평과진청 생청 놓고
조란산적 웃짐쳐
양회간 천엽 콩팥 양편에다 벌여놓고
청단 수단 잣배기며
인삼채 도라지채
낙지 연포 콩기름에
갖인 양념 모아 놓고
산채 고사리 수군 미나리
녹두채 맛난 장국 주루루루 들어부어
청동화로 백탄 숯 부채질 활활
계란을 톡톡 깨 웃딱지를 띠고
길게 내리워라 꼬꼬 울었다 영계찜
오도독 포도독 매추리탕
손 뜨건데 쇠저말고
나무저를 드려라
고기 한 점 덥벅 집어
맛난 지름 간장국에다
풍덩 드리쳐 피시!
아니리
과화주 좋은 술을
화잔에 가득 부어
“옛소, 시숙님.
박주오나 약주나 한 잔 드시지오.”
제수가 주는 술이거든
그대로 받아 쳐 먹는 것이 아니라
“야 흥보야!
너는 형제간이라
대강 내 속을 알것이다 마는
내가 남의 초상집 가서도
술상 끝에 권주가 없이는 술 안먹어.”
“하옵지만 여기서 누가 권주가를 하겠습니까?”
“권주가 할 사람 따로 있냐?
제수씨 곱게 입힌 김에 권주가 한 꼭대기 시켜라.”
진양조
흥보 마누라 기가 맥혀
들었던 술잔을 공중으로 피르르르 내던지고
“여보시오 시숙님, 여보 여보 아주버님!
제수더러 권주가 허라는 법
고금천지 어디 가 보았소.
지성이면 감천이라
나도 오날은 쌀과 돈이 많이 있소.
전곡자세를 그만 하시오.
엄동설한 치운 날에
자식들을 앞세우고
구박을 당하여 나오던 일을
곽 속에 들어도 못 잊것소.
보기 싫소 어서 가시오!
속을 차리면 뭣 허러 내 집에 왔소.
안 갈라면 내가 먼저 들어 갈라요.”
떨쳐 버리고 안으로 들어간다.
아니리
“야, 흥보야!
니 계집 못쓰것다. 썩 버려라.
내가 다시 새 장가 보내주마.
그리고 저 윗목에 삐란 거 저거 무엇이냐?”
“예, 화초장이 올시다.”
“그 안에 뭐 들었냐?”
“예, 금은 보화가 가득 들었습니다.”
“거 흥보야. 그것 나 도라.”
“그렇잖아도 형님 드릴라고.
몫 지어 놓은 것입니다.”
“그럴것이다. 말이 났응께 말이지,
내가 너를 어렸을 때
얼마나 이뻐했냐.
너를 업고 다니다가
내가 등허리가 다 문드러져 버렸다.
이리 내 놔. 내가 짊어지고 갈란다.”
“하옵지만 형님, 점잖한 처지에
어떻게 지고 가시겠습니까?
먼저 건너 가시면
제가 하인 시켜서
지어보내 드리오리다.”
“아니여, 매사는 불여 튼튼이여.
내 것 된 짐에 내가 짊어지고 갈란다.”
“아, 하옵지만 형님! 무거워서.”
“야 이놈아! 빨리 내 놔.
내가 장에 깔려서 그냥 남생이 등허리가 되어도
내가 그냥 짊어지고 갈란다.”
놀보란 놈이 화초장을 짊어지고 가면서
잊어 버릴까봐
외우고 가는 것이었다.
중중모리
“화초장 화초장 화초장
화초장 하나를 얻었다.
얻었네 얻었네
화초장 하나를 얻었다.”
도랑을 건너뛰다
“아차, 내가 잊었다!
초장 초장 아니다.
방장 천장 아니다.
구들장 된장 아니다.
고추장? 응? 고추장 고추장 비슷하면서도 아닌디 아니여.”
이놈이 거꾸로 붙이면서도 모르것다.
“초장화 장화초 장초화 화장초 아니다.
아이고 이것 무엇인가?
갑갑하여서 내가 못살것다.
아이고 이것 무엇인가?”
저희 집으로 들어가며
“여보게, 마누라!”
집안 어른이 어디 갔다가
집안이라고서 들어오면
우루루루 쫒아 나와서
영접 허는게 도리 옳제
좌이 부동이 왠일인가,
에라 이사람 요망허다.”
놀보 마누라 나온다.
놀보 마누라 나와
“아이고, 여보 영감!
영감 오신 줄 내 몰랐소.
영감 오신 줄 내가 몰랐소
이리 오시오 이리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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