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하는 날

이루펀트

좋다가 갑자기 밉던 이 집도
떠나기 전 누워보니 측은해져. 쉼터
4년 전 또 기억나네
진짜 이 집 짱이었는데
덩치만 커진 이삿짐

여기서 너랑 보냈던 밤이
하나씩 하나씩 떠올라
여길 떠나가도 니 생각나겠지
니 손길, 니 체온, 니 웃는 얼굴

책장 가득 수북이 먼지 쌓인 CD와 책
오랜만이야 나 짐 싸
짝 잃은 양말과 CD곽
없어진 줄만 알았던
자전거 열쇠까지 다
금이 가거나 빛바랜 채로 발견돼
부끄러워 잃어버린 건 멋
순수했던 집착 아닐까?
그때 알던 게 달라진 건 아닐 텐데
왜 난 삐딱
서랍을 정리하면
세 봉지나 되는 라이터
인연에 대한 도벽
왜 그리 내 꺼 아닌 것도
쑤셔 넣기 바빠 보호벽
기념품처럼 벽에
붙여놓은 그 추억들
사진 속 안부 물어보기도
어색해진 친구들
핸드폰은 어느새
번호로 변한 기억들의 무덤
사진들이 뜯어지고
압정자리 구멍 난
저 벽 역시도 우울한가 봐
조용히 빌어 이사 오는 사람이
행복으로 채워주기를
]
여기서 너랑 보냈던 밤이
하나씩 하나씩 떠올라
여길 떠나가도 니 생각나겠지
니 손길, 니 체온, 니 웃는 얼굴

이렇게 쉽게 이사하게 될지 몰랐었지
나 살던 집 모든 짐 빼니
왜 이리 낯선지
옮기는 거야 새로 몸 누일 곳
더 이상 들춰보지 않는 전공서적처럼
버리긴 좀 그렇고 꺼내볼 일 없는
이런 게 있었나
싶은 나만의 기념품들
트럭에 전부 실려 가네 Huh
내 짐이랍시고 똑소리 나네 Huh
더 이상 없겠지
옆집 커플의 싸움 소리도
그 덕에 찐득한 불면증과 다툴 일도
무수한 기억 선명히 남았는데
갑자기 나 홀로 타임머신 탄 듯해
새로운 삶에 대한 기대감이
새로운 동네로 날 이끌고 가네
이 밑에 깔린 허전함이 없다면
그건 거짓말
초콜릿만한 외로움 삼킨 거니까

날 두고 가지 말라는 너의 말에
뭐라고 대답했는지 이젠 잊었지
그 모든 시간이 너와의 기억들이
지금은 어제의 꿈인걸

새로운 꿈 위한 새로운 집
잠시 외로움뿐인 여기 낯선 집
제일 아끼던 것 두고 가는 셈
덜컹이는 창문 밖 돌아보게 돼
새로운 꿈 위한 새로운 집
잠시 외로움뿐인 여기 낯선 집
낯선 방 괜찮아 잘 될 거니까
짜장면부터 먹어요. 숨 돌릴 시간

여기서 너랑 보냈던 밤이
하나씩 하나씩 떠올라
여길 떠나가도 니 생각나겠지
니 손길, 니 체온, 니 웃는 얼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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