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지냈어?”
눈처럼 하얀 와이셔츠를
차려입고 허리에 작은
앞치마를 두른 양이
식당으로 들어와 손을 흔듭니다.
오랜만에 옛 생각을 했더니
그다지 반갑지 않은 손님이
찾아왔군요. 저 뽀송뽀송한
털과 톡 튀어나온 주둥이를
마지막으로 본 게 언제였더라.
“책 읽고 있었어?”
간만에 제법 읽을만한
책을 발견해 독서를 좀
해보려 했건만, 눈치 없는
방해꾼 덕에 허투루
돌아갔군요. 저는 읽고 있던
책을 접어 테이블 위에
올려놓습니다.
“양을 구하는 다섯 가지 방법?
이 책이 벌써 나왔어?”
냉큼 책을 집어 들며
녀석이 목소리를 높입니다.
<양을 구하는 다섯 가지 방법>은
목동에게 괴롭힘을 당하던 양을
다른 동물들이 구해주는
이야기입니다.
스토리는 뻔하지만 이야기를 끌고
가는 힘이 좋아 재미있게
읽던 중이었죠.
“이거 나도 아주 인상 깊게 읽었어!”
인간들은 참 이상합니다.
동화에서든 소설에서든 양을
대체로 착하고 유순한 캐릭터로
묘사하는데, 제가 아는 양은 절대
그런 동물이 아니거든요.
“악! 종이에 발을 베었잖아!!”
보십시오. 이 녀석처럼 성미가
급하고 다혈질에 언변이 화려한
허풍쟁이. 그게 제가 생각하는
양입니다.
“못 본 사이에 더 잘 생겨졌네!”
아첨도 잘하는 편이죠.
“쓸데없이 왜 찾아왔어?”
“냉정하게 말하지마, 키티~.”
“그렇게 부르지 말랬지.”
끔찍한 별명으로 저를 부르는
것은 녀석의 악취미입니다.
물론 저 흉측한 호칭이 제 실제
이름은 아니니 오해하지 않으시길
바랍니다.
“몇 년 만에 찾아오는 건데
반가운 척을 안 해?”
“반갑지 않으니까.”
투덜거리며 의자에 앉은 녀석은
제가 읽다 만 책을 유심히
들여다봅니다.
“키티!”
“한 번만 더 그렇게 부르면
털을 다 뽑아버릴 테니 그렇게 알아.”
“어우, 알겠어. 근데 이 책
말이야, 내가 인터뷰한 소설인 거
알고 있었어?”
“주인공 성격에 현실 반영이
하나도 안 된 이유를 이제 알 것 같군.”
“아니지. 이 책이야말로 양의
본질을 가장 잘 표현한 이야기라고.
여기 나오는 양은 용감하고
아름답고, 사랑스러우면서도,
아주 온화하거든. 바로 나처럼.”
들을 가치가 없는 말이군요.
저는 손을 뻗어 녀석이 들고 있는
책을 빼앗아 옵니다. 앞으로 양이
주인공인 책은 두 번 다시
읽지 않아야겠다는 다짐을 하면서요.
불쾌한 제 표정은 안중에도
없는지, 녀석은 복슬거리는
머리털을 손끝으로 만지며
다른 손으로 입술을 톡톡
두드립니다.
“내 손님 중에 글솜씨가
아주 뛰어난 작가가 있거든.”
책을 가지고 조리
공간으로 돌아간 저는 녀석의
손이 닿지 않는 높은 선반 위에
책을 올려놓습니다. 하필 왜
<양을 구하는 다섯 가지 방법>
따위를 읽고 있었던 건지
후회를 하면서 요.
“됐고. 왜 왔어?”
“일단 먹을 것 좀 줘.”
“맡겨놨어?”
새초롬한 표정을 지으며
녀석이 대꾸합니다.
“식당에서 손님을 이렇게
푸대접해도 되는 거야?”
“손님이었어?”
“그러엄! 이야기를 가져왔으니까
손님이지! 차별하지 말라고!”
이야기를 가져오면 식당에서
쫓겨나지 않는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녀석입니다. 속으로
한숨을 삼키는 동안 녀석의
얼굴에는 다시 능글능글한
미소가 떠오릅니다. 역시 양은
교활한 동물입니다.
“음식 솜씨는 많이 늘었는지 한번 보자고.”
의기양양한 표정이 마음에 들지
않는군요. 뭐, 고양이와 양이
엄청나게 사이가 좋다면 그게
더 이상한 일일지 모르죠. 어쨌거나
제 사정을 이해하는 유일한
존재니 참아 주는 수밖에…. 잠깐.
좋은 생각이 났습니다.
“왜 웃지, 갑자기?”
제 얼굴에 떠오른 미소를 발견한 양이
살짝 불안한 목소리로 묻습니다.
하지만 그런 걸 신경 쓸 때가 아니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