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리]
이렇듯 낮이면 강두에 가 울고, 밤이면 집에 돌아와 울고, 눈물로 세월을 보내난디, 그때여 심봉사는 근근부지 지낼 적에, 때마침 그 근촌에 사는 한 여인이 있난디, 호가 뺑파였다. 심봉사가 딸 팔아 전곡간에 두고 산단 말을 듣고 동리 사람도 모르게 자원출가 하였제, 이 몹쓸 뺑덕이네가 심봉사 가산을 모다 먹성질로 망하는디, 꼭 이렇게 망하것다.
[자진모리]
밥 잘 먹고, 술 잘 먹고, 고기 잘 먹고, 떡 잘 먹고, 벼 퍼 주고 고기 사 먹고, 쌀 퍼 주고 떡 사 먹고, 이웃집이 밥 붙이기, 동인 잡고 욕 잘 허고, 초군들과 싸움허기, 잠자며 이 갈기와 배 긁고 발목 떨고, 한밤중 울음 울고, 오고가는 행인 다려 담배 달라 실랑 허기. 술 잔뜩 먹고 정자 밑에 낮잠 자기. 힐끗허면 핼끗허고. 핼끗허면 힐끗허고, 삐쭉허고 빼쭉허고, 빼쭉허면 삐쭉허고, 남의 혼인허랴 허고 단단히 믿었난디 해담을 잘 하기와, 신부 신랑 잠자는디, 가만 가만 가만 가만 문 앞에 들어서서, ‘불이야!’ 이년의 행실이 이리 허여도 심봉사는 아무런 줄을 모르고, 어떻게 미쳐 놓았던지, 나무칼로 귀를 싹 베어가도 모르게 되었든가 보더라.
[아니리]
하로난 심봉사 돈 궤를 만져보니, 엽전 한 푼이 없 제, “여, 뺑덕이네! 돈 궤에 엽전 한 푼이 없으니, 거 어찌된 일이여? 아이고, 영감도! 저러기에 외정은 살림속을 몰라. 아, 영감 드린다고 술 사오고, 떡 사오고, 고기 사고, 담배 사고 이리저리 쓴 돈이 그 돈 이제, 하늘에서 뚝 떨어져서 썼소, 땅에서 쑥 솟아나서 썼소!” “나 술, 떡, 고기, 담배 잘 사주더라! 여편네 먹는 것, 쥐 먹는 것이라더니, 할 수 있나?” “영감!” “또 어째서” “저 지난 달부터 이상한 일이 생겼소?” “어쩐 일인디?” “저 지난 달부터 밥맛은 구미가 뚝 떨어지고, 신 것만 구미가 당기는 것이 어째 그런가 모르것소?” “아니, 뭣이 어쪄! 신 것이 구미가 당겨? 파하하하 그러면 거 애기 설라나보네! 그러면 신 것이 구미가 당기면 무얼 먹는가?” “아, 풋살구 먹지요!” “살구는 얼마나 먹었는디,” “씨 되야보니 닷 말 서되 뿐이는 안됩디다.” “어허, 거 신 것을 그리 많이 먹었으니, 그 놈 낳더라도 시건방지지 않을랑가 모르것네.” 하로난 관가에서 부름이 있어 심봉사 들어간 즉, 황성서 맹인잔치가 있다고 어서 급히 올라가라 노자까지 내어주니, 심봉사 노자 받아들고 집으로 돌아와, “여, 뺑파! 황성서 맹인잔치를 배설 하였는디, 어서 급히 올라가라 노자까지 후히 주니, 나 혼자 어찌 갈게?” 아이고 여필종부라니, 천 리라도 만 리라도 영감 따러가 제, 어느 놈 따라갈 놈 있소.” “아닌게 아니라, 우리 뺑덕이네가 열녀도 되고 백녀다 백녀여, 그러면 의복 쪼깨 있는 것, 자네는 봇짐해서 이고 나는 나나리봇짐 해 짊어지고 어서 떠나세.” 황성서 맹인잔치를 배설한 지가 여러 날이 된 모양이여. 막상 도화동을 떠나려고 하니 좀 서운하던가 보더라.
[중모리]
“도화동아 잘 있거라. 무릉촌도 잘 있거라. 내가 인자 떠나가면 어느 년 어느 때 오랴느냐? 어이 가리너? 어이 가리? 황성 천 리를 어이 가리? 조자룡의 월강허던 청총마나 있거드면 이 날 이 시로 가련마는, 앞 못 보는 이내 병신이 몇 날을 걸어서 황성을 갈끄나? 여보소 뺑덕이네!” “예,” “길소리나 좀 멕여주소. 다리 아퍼 못 가겄네.” 뺑덕이네가 길소리를 메기난디, 어디서 들었다는지 경상도 메나리조 반, 전라도 밭매는 소리 반 섞어서 멕여 보는디, “어이 가리너? 어이를 갈끄나? 황성 천 리를 어이를 갈끄나? 날개 돋힌 학이나 되면, 수루루루 펄펄 날아 이 날 이 시로 가련마는, 앞 못 보는 봉사 가장 데리고 몇 날을 걸어서 황성을 갈 끄나?” “일색이다, 일색이여. 우리 뺑덕이네가 일색이여.”
[자진중모리]
이렇타시 올라갈 제, 일모가 되니 주막에 들어 잠잘 적에, 그 때여 뺑덕이네는 황봉사와 등이 맞어 심봉사를 잠들여 놓고 밤중 도망을 허였난디, 심봉사는 아무런 줄을 모르고 첫 새벽에 일어나서 뺑덕이네를 찾는구나.
[아니리]
“여, 뺑파. 어서 일어나. 오뉴월 삼복성염에 더워서 낯에는 갈 수 없고, 새벽에 한 사오 십 리는 쳐야 될 것인디, 아, 어서 일어나!” 어허, 또 여기까지 와서 재담이제, 그 방구석지에서 뭣하고 섰어, 내가 보듬고 와야 제, 방 제 구석을 더듬어도 없겄다. 심봉사 그제야 겁이 왈칵 나서, “여보, 주인! 혹 우리 마누라 거기 안 갔소?” “아니오, 어떤 젊은 봉사하고 새벽질 친다고 벌써 떠났소.” 아니 “뭣이 어쪄? 아니 그러면 주인 녀석이 되어가지고 진작 말을 해야지, 인자사 그 말을 혀?” “아, 그 젊은 봉사하고 내외간인 줄 알았지, 누가 영감님하고 내외간인 줄 알았소?” “그난 그러것다. 아이고, 이 년이 갔네.”
[진양조]
“허허, 뺑덕이네가 갔네그려! 예기, 천하 의리 없고 사정 없는 요년아! 당초에 네가 버릴 테면, 있든 곳에서 마다고 허제, 수백 리 타향에 다가 날 버리고, 네가 무엇이 잘 될쏘냐? 귀신이라도 못 되리라, 요년아. 아이고. 어라어라. 현철허신 곽씨도 죽고 살고, 출천대효 내 딸 청이 생죽엄도 당했는디, 네까짓 년을 생각허는 내가 미친 놈이로고나. 에끼, 호랭이가 바싹 깨물어 갈 년. 내가 네년을 생각하면 인사불성에 쇠아들 놈이다.”
[중모리]
주인을 불러 하직허고, 주막 밖을 나서더니 그래도 생각나서 섰든 자리 퍼썩 주저앉더니, 덱이네! 덕이네! 뺑덕이네! 모지고도 야속헌 년. 너 그럴 줄 내 몰랐다. 내가 눈이 있거드면, 저기 저 산은 무슨 산이요, 이 길은 어드로 행하는지 분별허여 갈 것인데, 지척 분별을 못 헌 병신이 어이 찾어 황성을 갈거나. 새만 푸르르르르르 날아가도 뺑덱이넨가 의심을 허고, 바람만 우루루루루루 불어도 뺑덕이넨가 의심을 허는구나. 더듬더듬 올라갈 제. 그 때는 어느 땐고? 오뉴월 삼복성염이라. 태양은 불볕 같고, 더운 땀을 휘뿌리며 한 곳을 점점 당도허니,
[중중모리]
천 리 시내는 청산으로 돌고, 이 골 물이 쭈루루루루, 저 골 물이 콸콸, 열의 열두 골 물이 한테로 합수쳐 천방자 지방자 월턱져 구부쳐, 방울이 버큼져, 건너 병풍석 에다 마주 쾅쾅 마주 때려, 산이 울렁거려 떠나간다. 요런 경개가 또 있나. 심봉사 좋아라, 물소리 듣고서 반긴다. 모욕을 헐 양으로, 더듬더듬 들어가, 상하 의복을 훨훨 벗어 지팽이로 눌러놓고, 더듬더듬 들어서, “에, 시원허고 장히 좋다. 물 한 주먹을 덥썩 쥐어 양추질도 꿜꿜 허고, 또 한 주먹 덥쑥 쥐어 저드랑도 문지르며, 에, 시원하고 장히 좋다. 삼각산 올라선들 이에서 시원하며, 동해 유수를 다 마신들 이어서 시원헐거나? 얼씨구 좋구나, 기화자 좋네. 툼벙툼벙 좋을씨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