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리]
그 때여 심황후께서는 아무리 기다려도 부친이 오시지 아니허니, 슬피 통곡을 허는구나.
[진양조]
“이 잔치를 배설키는 부친을 위함인디, 어찌 이리 못 오신고. 당년 칠십 노환으로 병이 들어서 못 오시는고, 내가 정녕 죽은 줄을 아옵시고 애통타가 이 세상을 떠나셨나. 부처님의 영검으로 완연히 눈을 떠서 맹인 축으 빠지셨나. 오날 잔치 망종인디, 어찌 이리 못 오신고?”
[아니리]
이렇듯 탄식허다 예부상서를 또 다시 부르시더니, “네 여봐라. 오늘도 거주 성명을 명백히 기록하야 차차 호송허되, 만일 도화동 심맹인 계시거든 별궁으로 모셔들여라.” 봉사를 차례로 점고해 내려올 적에, 제일 말석에 앉은 봉사한테 당도허여, “여보시오. 당신 성명이 무엇이오?” “예. 내 성명은 심학규요.” “심맹인 계신다!” 허더니마는, “어서 별궁으로 들어갑시다.” “아니, 어쩔라고 이러시오?” “우에서 상을 내리실지 벌을 내리실 줄은 모르나, 심맹인을 모셔오라 허셨으니 어서 별궁으로 들어갑시다. ”내가 공연한 잔치에 왔제. 내가 딸 팔아먹은 죄가 있는디, 이 잔치를 배설키는 나를 잡을 죽일 양으로 배설을 헌 것이로고나. 아닌게 아니라, 나 같은 놈 더 살아서 뭣 헐것이오? 내 지팽이나 좀 잡아주시오.” 별궁에 들어가더니, “심맹인 대령하셨소!” 심황후 부친을 살펴보니 백수풍신 늙은 형용 슬픈 근심 가득한 게 부친 얼굴이 은은하나, 심봉사가 딸을 보내놓고 삼년 동안 어찌 울었던지 눈갓이 희어지고, 피골이 상접이라. 또한 산호 주렴이 가리어 자세히 보이지 아니허니, 심황후 또 다시 부부허시되, “네 여봐라. 그 봉사 거주를 묻고, 처자가 있나 물어보아라.” 심봉사 처자 말을 듣더니마는, 먼 눈에서 눈물이 뚝뚝뚝뚝 떨어지며,
[중모리]
“예, 소맹이 아뢰리다. 예, 아뢰리다. 예, 소맹이 아뢰리다. 소맹이 사옵기는 황주 도화동이 고토옵고, 성명은 심학규요, 을축년 삼월 달으 산후 병으로 상처허고, 어미 잃은 딸자식을 강보에다 싸서 안고, 이 집 저 집을 다니면서 동냥젖을 얻어멕여 겨우겨우 길러내여, 십 오세가 되었는디, 효성이 출천하야 애비 눈을 띄운다고 남경 장사 선인들께 삼백 석에 몸이 팔려, 인당수 제수로 죽은 지가 삼년이오. 눈도 뜨지를 못하고 자식만 팔아먹었으니, 자식 팔아먹은 놈을 살려주어 쓸 데 있소? 당장으 목숨을 끊어주오.”
[자진모리]
심황후 기가 막혀 산호 주렴을 걷혀버리고 보선발로 우루루루루루루루루루. 부친의 목을 안고, “아이고, 아부지!” 심봉사 깜짝 놀래, “에이? 누가 날 다려 아버지여? 에이? 나는 아들도 없고, 딸도 없소! 무남독녀 외딸 하나 물에 빠져 죽은 지가 우금 삼년이 되았는디, 누가 날다려 아버지여?” “아이고, 아부지! 여태 눈을 못 뜨셨소? 인당수 풍랑중으 빠져 죽은 청이가 살어서 여기 왔소. 아버지, 눈을 떠서 소녀를 보옵소서.” 심봉사가 이 말을 듣더니 어쩔 줄을 모르는구나. “청이라니? 이게 웬 말이여? 내가 지금 죽어 수궁을 들어왔느냐? 내가 지금 꿈을 꾸느냐? 죽고 없난 내 딸 청이, 여기가 어디라고 살어오다니 웬 말이냐? 내 딸이면 어디 보자. 어디! 내 딸 좀 보자! 아이고, 내가 눈이 있어야 내 딸을 보제, 아이고, 답답허여라! 어디, 내 딸 좀 보자!” 심봉사가 두 눈을 끔쩍끔쩍 허더니마는, 눈을 번쩍 떴구나.
[아니리]
심봉사 눈 뜬 훈짐에 잔치에 참례한 봉사 모도 따라서 눈을 뜨는디,
[잦은모리]
만좌맹인이 눈을 뜬다. 전라도 순창 담양 세갈모 떼는 소리라. ‘쫙 쫙’ 허더니마는 그저 눈을 떠버리는구나. 석 달 동안 큰 잔치의 먼저 와서 참례하고 내려간 맹인들도 저의 집에서 눈을 뜨고, 미처 당도 못 한 맹인 중도에서 눈을 뜨고, 가다 뜨고, 오다 뜨고, 서서 뜨고, 앉아 뜨고, 실없이 뜨고, 어이 없이 뜨고, 홰 내다 뜨고, 울다 뜨고, 웃다 뜨고, 떠보느라고 뜨고, 시원히 뜨고, 일허다 뜨고, 앉어 놀다 뜨고, 자다 깨다 뜨고, 졸다 번뜻 뜨고, 눈을 끔쩍거리다 뜨고, 눈을 비벼보다 뜨고, 지어비금주수까지 일시으 눈을 떠서 광명 천지가 되었구나.